이 포스팅은 유튜버 '요런시점 movie' 님의 '돈룩업 해석리뷰'의 핵심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창작한 게시물이 아님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아래에 해당 유튜브 영상 링크를 남겨 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돈룩업은 기후 온난화 말고 또 다른 아주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 진실을 매개체로 해서 소통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고 진실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 버린 현재 SNS 시대의 답답한 상황이죠.
돈룩업은 기후문제에 관한 영화이면서 또한 '포스트-트루스(post-truth)'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포스트 트루스란, 대중의 여론을 형성하는데 객관적인 진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믿음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입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믿음과 감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최근의 트렌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진실이 다른 고려 사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 받고, 그 결과 진실로부터 이탈하는 행위에 대해서 대중이 아주 수용적이고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런 포스트 트루스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가 바로 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는 '과학 부인주의'입니다. 이상한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 동안 얼마든지 있어왔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에 넘쳐났죠.
하지만, 최근의 탈진실의 트렌드가 유독 병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진실 따위야 어쨋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듯한, 진실을 탐구하고 검증하는 프로세스 그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공개적으로 뻔뻔스러운 태도 때문입니다.
이 포스트 트루스라는 단어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돈룩업에서도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의 가치를 아주 우습게 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대사지만, 과학자들은 100%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체계적인 관찰과 상호검증을 통해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과학 특유의 신중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악용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는 객관적인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진실은 보는 사람 관점 나름이라고 말이죠.
이러한 것을 '상대주의적 과학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99.78% 라고 과학자들이 말을 해도, 그 나머지 0.22%의 가능성도 또 다른 진실이 아니냐면서 그걸 붙잡고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돈룩업의 모든 장면, 모든 대사에는 탈진실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시들로 가득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영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서로가 합의하고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실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위해서, 사업가는 돈을 위해서, 언론인은 시청률을 위해서, 연예인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 네티즌은 조회수를 올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실을 제멋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또 퍼뜨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진실이야 어쨌든 뭔 상관이냐 그냥 내가 믿고 싶은 거 믿을꺼야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니 소통을 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죠. 저마다의 감정과 기분과 신념이 전부이고 필요에 따라서만 진실을 휘두르거나 또는 진실을 왜곡합니다.
그렇게 다들 자기 감정을 이해해 달라고, 자기 신념을 존중해 달라고, 모든 사람들이 외치지만 정작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같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 분모인 진실마저 무너진 세상에서는 결국 이득을 보는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더 힘센 자들, 더 돈 많은 자들, 더 목소리 큰 자들, 더 뻔뻔한 자들, 더 정신 나간 자들입니다.
이렇게 진실의 가치마저 무너진 시대에 인류에게 다가올 재앙은 단지 혜성이나 기후 온난화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어렵게 건설해 낸 현대문명의 기반을 뿌리 채 무너뜨리는 어떤 형태의 재앙이라도 될 수 있겠죠.
수백년 전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가 일어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버린 자리에 진실에 대한 믿음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그 진실에 대한 믿음마저 위협 받게 된 지금 인류에게는 누구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뭐가 더 남아있을까요?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당원이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또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터무니없는 걸 믿도록 만드는 사람은 당신이 잔악한 행위를 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어쩌면 돈룩업은 그 미래의 재앙을 직접 맞게 될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영화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 되게 하는 일은 모두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